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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앞에 필요했던 인간적인 진심<이반 일리치의 죽음-톨스토이>> Culture&refinement/서평 2017. 8. 29. 21:59
이 책을 선택한 이유
어떤 출판사에서 삶과 죽음, 불멸을 특집으로 묶은 시리즈 중 '죽음이란 무엇인가'에서 이 책이 인용된 것을 보았다. 우리가 언제, 어디서, 어떤 죽음을 맞이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대해 '죽음도 운명인데, 두렵다는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는 태도가 진정 바람직한 것인가'라고 물으며 이 책을 소개했다. 이반 일리치가 자신에게 닥칠 죽음을 두려워했고, 그래서 죽음을 어떻게든 무시해보고자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톨스토이가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 궁금해졌다.
이 책은
이반 일리치의 죽음 후 장례식에서부터 시작한다.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그의 마지막을 기리는 자리에는 진심으로 마음 아파하는 사람이 드물었다. 그의 죽음 후 연금을 걱정하는 부인부터 장례식 후 시작할 카드놀이만 생각하며 서둘러 나오는 친구까지 이반 일리치라는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아왔길래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이가 이토록 없는지 궁금해졌다.
놀랍게도, 이반 일리치는 누구에게나 인정받을만 한 삶을 살았다. 편히 말하면, 꽤 잘 살았다. 그가 놓친 것은 무엇이었을까.
출세가도를 달린 아버지 아래 명석한 두뇌로 예심판사, 검사보, 검사, 항소법원 판사자리에 올랐고, 공과 사를 구분할 줄 알았다. 권력을 헛되게 쓰지도 않았으며, 부드러운 어투로 사람들의 호감을 샀다. 매력적인 여성과 사랑에 빠져 결혼에 성공했지만 종종 다툼은 있었다. 대신 일과 사교에서 인생의 즐거움을 느끼며 품위를 지키고 풍요로움을 느끼며 살았다.
책 후반부에는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이반 일리치의 정신적 고통과 혼란이 구체적으로 나타나있다.
죽음 앞에서 '잘 살아온 삶'이란
그는 꽤 잘 살아온 편이지만, 정말 '잘 살아온 것일까?'
우리는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가진 자들을 '잘 산다'고 표현한다. '잘' 이라는 표현은 '옳고 바르다'는 뜻인데, 그들이 제대로 사는지는 그들의 인간성을 보고 판단할 일이다. 그런데 우리는 많은 것을 누리고 사는 것을 옳고 바르게 사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으니, 우리의 시각은 한참 왜곡되었다.
그렇게 속칭 잘 산다는 기준에 적합한 삶을 산 이반 일리치는 죽음 앞에서 너무나 외롭고 힘들었다. 누구든지 그의 고통에 귀기울여주고, 보듬어주길 바랬지만 가족도, 친구도 그렇지 않았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죽음 앞에 후회가 없을 것인가, 언젠가 다가올 죽음과 고통에 우리는 얼마나 초연해질 수 있을 것인가.
그의 죽음 앞에 고통스러웠던 것은 그가 잘못 살아왔기 때문일까, 그를 둘러싼 사람들이 너무했던 것일까, 아니면 인간적인 면을 서로 들여다보지 않았던 모두의 잘못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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